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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10.20 에베소서 4장 32절
길과 진리 생명되신 예수님 -
하나님이 창조하신 창조물을 보면 치유가되고 마음이 편해진다
그런데 밤에 산에서 길을 잃으면 마음이 어두워진다. 평소에 잘 아는 길이라도 밤에는 길을 잃게된다. 이런 어려움이 있더라도 우리가 길만 잘 찾으면 된다. 우리 인생도 길이다. 올바른 길을 제시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세상 그 어떤 사람도 예수님처럼 내가 길이요 진리요 라고 말씀해주신 분은 없다. 가장 정확한 네비게이션인 것이다. 네비가 길치에게는 큰 축복이다. 어떤 사람은 처갓집에 갈 때마다 길을 물어본다고 한다. 간혹가다가 네비를 잘 따라가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 예수님만 믿고 따라오면 인생의 안전하고 확실한 안내자가 되신다. 이 세상에서 어떤 사람을 신뢰할 수 있겠는가.
우리가 아버지께로 갈 수 있는 가장 유일한 길은 오직 예수그리스도 외에는 다른 어떤 방법이 없다. 그 예수님은 길이 되시기도 하시지만 생명이시기도하다. 많은 사람들이 물질과 건강을 버리면서 인생을 허비한다. 그 길에서 돌이켜서 올바른 길로 가지 않으려고 한다는 것이 문제인 것 이다. 어떻게해서든지 잘못된 길에서 어떻게 해보려고 애를 쓴다. 그런 노력과 열정을 예수님께로 시선을 옮겨야한다. 사람이 지혜롭다고 해도 그렇다. 예수님이 제시한 길 그 길로 가라.
1.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내가 아직은 잠시 너희와 함께 있지만 너희가 나를 찾게 될 것이다. 주여 어디로 가십니까라고 물어본 베드로. 왜 주님이 어디로 가시는지 이해하기 어려운 베드로. 지금 이대로 예수님과 함께하는 것이 좋은데 이별을 말씀하시는 예수님 말씀이 이해되지 않았다. 왜 그렇게 해야하는지 답답한 마음이 들었을 것이다. 때로는 열심히 할 때가 있다. 어떨 때는 전혀 이해도지 않는 상황이 오기도 한다. 이것이 생각의 차이다. 모든 교회가 내 생각에 다 맞진 않는다. 하나님의 뜻이 옳고 바르다고 생각한다면 거기에 맞춰 살 수 있는 것이다. 예수님이 왜 가셔야 하며 왜 그렇게까지 해야하는지 이해하지 못했었다. 이런 정의롭고 의협심이 강한 상황에서 예수님이 찬물을 끼얹는 말씀을 하신다. 베드로가 세번이나 예수님을 부인한다는 말이었다. 정말 베드로는 예수님 말씀처럼 예수님을 부인했다. 예수님을 부인할 수 밖에 없었던 베드로. 이런 연약한 인간인 우리들의 모습을 보는 것 같다.왜 예수님이 그곳에 가야하는지 이해가 안되는 상황이었다. 오늘 목사님이 어딘가 가신다고 한다면 우리도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는데 이것이 그것과 같은 맥락이다. 갑자기 뜬금없이 어디론가 가신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멘붕이 올지도 모른다. 건강에신경 많이 쓰는 사람들. 영양식을 찾아다니는 사람들. 어떤 사람들은 밥을 라면으로 먹으면서 비타민제 챙겨먹는다. 이것저것 챙겨먹어도 병에 걸리는 건 어쩔 수가 없다. 그리고 아직 현대 의술로는 치료 못하는 병이 있다. 그게 암이다. 그만큼 암이라는 병은 두려운 것이다. 우리의 가장 큰 병은 두려워하고 근심하는 것 곧 스트레스다. 보약을 아무리 먹어도 걱정하고 근심하면 다 소용없다. 걱정 염려 불안해하는 마음은 우리의 영혼과 신체를 망가뜨린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면 근심이 떠나가야하는게 맞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염려를 아시고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오늘날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는 크리스챤이 해야하는 것은 근심하지 않은 것이다. 우리에게 어려운 일들이 일어날 때 근심과 걱정 염려가 들어온다. 사람은 환경이나 형편에 많은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사단은 이런 것으로 공격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니 (딤후1:7)
두려움은 누구에게나 다 있지만 우리에겐 그 두려움을 이길 힘이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두려움을 이길 능력을 주신다고 했다. 우린 늘 만사형통하게 살고 싶어한다. 그런데 분명히 알아야할 것은 사단이 있는 한 걱정과 두려움은 우리에게 계속 공격이 있을 것이다. 하나님은 두려움을 벗어나게 할 능력을 주셨다. 그 능력은 사랑과 절제의 능력인 것이다. 하나님과 사람을 사랑하는 사랑과 절제의 능력인 것이다.
예수님은 때가 차서 하나님께로 가는 것을 예비하고 계셨다.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요13:1)
사랑은 서로 주고 받는 것이다.
그 사랑이 불같이 일어났다가 사그러드는 것이 사람의 사랑의 단점이다. 주님은 우리를 끝까지 사랑하셨다. 변치 않는 사랑, 끝까지 사랑하시는 예수님께 감사하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을 주셨다. 왜 서로 사랑하라고 하셨을까?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요일4:20)
마지막 만찬 때 정말 필요한 말씀을 하셨는데그 말씀이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이었다. 서로 사랑하는 사랑의 능력이 없이는 누구도 하나님을 따를 수 없기 때문이었다.
이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드러나나니 무릇 의를 행하지 아니하는 자나 또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니라 (요일3:10)
하나님의 속성은 사랑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주님이시다. 배반자인 유다 까지도 사랑하신 예수님이시다. 그 사랑의 예수님께 모든 걱정과 근심과 염려를 맡기라. 주님을 향한 믿음이 불같이 일어날 것을 믿음으로 선포하라.
2.나를 믿으라
당시 유대인에게 있어서 예수님은 생소했다. 하나님은 알았지만 예수님은 잘 몰랐다. 나를 믿는 것이 하나님을 믿는 것이라고 했다. 하나님을 알면 예수님도 알 수 있는 것이다. 빌립아 내가 오랫동안 너와 함께 했는데 너희가
믿음은 내가 아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분이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인정하는 것이다. 그 분이 다시 오실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진정한 믿음은 지식적인 것에서 머무르면 안되는 것이다. 알고 믿고 있는 것 자체가 믿음이다. 정말 믿음은 내 삶을 예수님께 전적으로 맡기는 것에 있다. 한번 밖에 살 수 없는 내 인생인데 말이다. 이것이 믿음의 고백인 것이다. 자녀교육은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 자녀교육은 어렵다. 내가 어려우면 하나님께 맡겨야하는 것이다. 내가 갖고 있는 것을 포기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신뢰하고 믿기 때문에 맡길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모든 행사를 예수님께 맡길 수 있는 것이다. 마음에 평강이 오면 예수님의 싸인을 받은 것이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요14:27)
이것이 믿음이다. 믿음이 없으면 근심과 불안으로 살수 밖에 없는 것이다. 내 안에 주님이 주시는 평강과 화평이 있으면 비참한 인생이 아닌 것이다. 내 안에 주님 주시는 평강이 있으면 그게 아니다. 믿음대로 되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믿음은 바라보는대로 되어지는 것이다. 내가 바라보지 못하는게 문제지 바라보는 것이 결코 허황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믿음으로 견고한 여리고성을 돌 때 여리고성이 무너졌다.
믿음이 있는 사람은 계속 믿음으로 살 수 있는 것이다. 세상에는 내 힘으로 안되는 일이 너무 많다. 내 힘으로 안되면 다른 방법을 찾아 볼 수 있는 것이다. 내 힘으로 안되는 걸 알았다면 인정하는 것이다. 믿음대로 되어질 것을 믿음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이런 것은 이론과 공식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다. 믿음은 실상이다.믿음을 오해하면 안된다. 근심거리가 전혀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어떤 형태로든 근심은 누구나에게 있다. 많은 근심거리를 갖고 있으면서도 평강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은 예수님 믿는 사람이다.
정말 힘들고 괴로운 것이 마음의 근심이다. 해결이 안되는 문제가 있으면 고통스럽다. 육체의 고통은 시간이 지나면 그친다. 끝없는 걱정거리로 인생을 파멸로 끌고가는 사단의 유혹을 이겨내라.
하나님을 믿으니 나를 믿으라는 말씀이 믿음으로 들어오지 않았을 것이다. 놀라운 일들을 행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대적하는것이 하나님을 믿는 행위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오히려 이들에게는 예수님이 오신 것이 죄인의 자격을 벗어버릴 수 있는 기회였지만 대부분이 대적했다. 어떤 사람이든 하나님앞에 나아가려면 예수님을 통해서만 나아갈 수 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14:6)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들을 수 있다는 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얼마든지 하나님 말씀을 대적할 수 있다. 그 안에 하나님의 영인 성령님이 없다면 그렇게 될 수 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고전12:3)
내가 하나님 믿는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이다. 놀라운 축복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근심하지 말라고 말씀해주셨다. 우리를 위해 거처를 예비하러 가신다고 말이다. 사람들은 예수님이 어디로 가시는지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가는 곳마다 기적과 유익을 주는 예수님을 엄청난 지도자라고 볼 수도 있었을 것이다. 뭔가 내가 유익을 얻겠다라고 볼 수도 있었을 것이드. 주린 자를 채워주는 그런 일을 위해서 이 땅에 오신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는 착각해선 안된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이 땅에 오신 것이다. 그렇게 사랑하는 하나님 자녀를 위해서 오신 것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기복신앙이란 내가 이 땅에서 잘 먹고 잘 사는 사람이라고 하는 것이다. 내가 이 땅에서 잘 되려고 하나님 믿는 것은 아닌 것이다. 나만을 위한 이기적인 인생을 살면서도 그 죄를 알면서도 여전히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 그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주신 것이다. 우리가 죽어서 갈 곳이 없다면 얼마나 막막할까..하나님의 이런 크고 원대한 뜻을 모르는 사람들은 단순히 자신의 유익이 사라졌기 때문에 그랬을 것이다.
우리가 예수님 믿고 사는 이유가 내 유익을 위해서라면 아닌 것이다. 예수님은 내 필요같은 작은 것을 채우기 위해서 오신 분이 아니라는 것이다. 엄청나게 큰 일을 하러 오신 예수님을 축소시키면 안 될 것이다. 우리가 가야할 곳이 분명히 있는 것에 감사한 것이다. 천국 소망이 없으면 소망이 없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천국 소망이 있다. 그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서 다시 오실 것이다. 예수님이 다시 오실 그 때에 살고 있는 것이다. 놀라운 은혜의 시대에 살고 있다.
이르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행1:11)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요14:3)
영접한다는 것은 상속받는다는 것이다.
그 길은 변치 않는 길인 것이다.
예수님이 길과 진리 되신다는 것을 전하고 영접한 자들이 더 하나님을 잘 믿을 수 있도록 도와야할 것이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좋아보이는 길이 아니라 생명의 길로 가야할 것이다.
끝까지 자격을 붙들고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을 믿자.
하나님이 창조하신 창조물을 보면 치유가되고 마음이 편해진다
그런데 밤에 산에서 길을 잃으면 마음이 어두워진다. 평소에 잘 아는 길이라도 밤에는 길을 잃게된다. 이런 어려움이 있더라도 우리가 길만 잘 찾으면 된다. 우리 인생도 길이다. 올바른 길을 제시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세상 그 어떤 사람도 예수님처럼 내가 길이요 진리요 라고 말씀해주신 분은 없다. 가장 정확한 네비게이션인 것이다. 네비가 길치에게는 큰 축복이다. 어떤 사람은 처갓집에 갈 때마다 길을 물어본다고 한다. 간혹가다가 네비를 잘 따라가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 예수님만 믿고 따라오면 인생의 안전하고 확실한 안내자가 되신다. 이 세상에서 어떤 사람을 신뢰할 수 있겠는가.
우리가 아버지께로 갈 수 있는 가장 유일한 길은 오직 예수그리스도 외에는 다른 어떤 방법이 없다. 그 예수님은 길이 되시기도 하시지만 생명이시기도하다. 많은 사람들이 물질과 건강을 버리면서 인생을 허비한다. 그 길에서 돌이켜서 올바른 길로 가지 않으려고 한다는 것이 문제인 것 이다. 어떻게해서든지 잘못된 길에서 어떻게 해보려고 애를 쓴다. 그런 노력과 열정을 예수님께로 시선을 옮겨야한다. 사람이 지혜롭다고 해도 그렇다. 예수님이 제시한 길 그 길로 가라.
1.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내가 아직은 잠시 너희와 함께 있지만 너희가 나를 찾게 될 것이다. 주여 어디로 가십니까라고 물어본 베드로. 왜 주님이 어디로 가시는지 이해하기 어려운 베드로. 지금 이대로 예수님과 함께하는 것이 좋은데 이별을 말씀하시는 예수님 말씀이 이해되지 않았다. 왜 그렇게 해야하는지 답답한 마음이 들었을 것이다. 때로는 열심히 할 때가 있다. 어떨 때는 전혀 이해도지 않는 상황이 오기도 한다. 이것이 생각의 차이다. 모든 교회가 내 생각에 다 맞진 않는다. 하나님의 뜻이 옳고 바르다고 생각한다면 거기에 맞춰 살 수 있는 것이다. 예수님이 왜 가셔야 하며 왜 그렇게까지 해야하는지 이해하지 못했었다. 이런 정의롭고 의협심이 강한 상황에서 예수님이 찬물을 끼얹는 말씀을 하신다. 베드로가 세번이나 예수님을 부인한다는 말이었다. 정말 베드로는 예수님 말씀처럼 예수님을 부인했다. 예수님을 부인할 수 밖에 없었던 베드로. 이런 연약한 인간인 우리들의 모습을 보는 것 같다.왜 예수님이 그곳에 가야하는지 이해가 안되는 상황이었다. 오늘 목사님이 어딘가 가신다고 한다면 우리도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는데 이것이 그것과 같은 맥락이다. 갑자기 뜬금없이 어디론가 가신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멘붕이 올지도 모른다. 건강에신경 많이 쓰는 사람들. 영양식을 찾아다니는 사람들. 어떤 사람들은 밥을 라면으로 먹으면서 비타민제 챙겨먹는다. 이것저것 챙겨먹어도 병에 걸리는 건 어쩔 수가 없다. 그리고 아직 현대 의술로는 치료 못하는 병이 있다. 그게 암이다. 그만큼 암이라는 병은 두려운 것이다. 우리의 가장 큰 병은 두려워하고 근심하는 것 곧 스트레스다. 보약을 아무리 먹어도 걱정하고 근심하면 다 소용없다. 걱정 염려 불안해하는 마음은 우리의 영혼과 신체를 망가뜨린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면 근심이 떠나가야하는게 맞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염려를 아시고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오늘날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는 크리스챤이 해야하는 것은 근심하지 않은 것이다. 우리에게 어려운 일들이 일어날 때 근심과 걱정 염려가 들어온다. 사람은 환경이나 형편에 많은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사단은 이런 것으로 공격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니 (딤후1:7)
두려움은 누구에게나 다 있지만 우리에겐 그 두려움을 이길 힘이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두려움을 이길 능력을 주신다고 했다. 우린 늘 만사형통하게 살고 싶어한다. 그런데 분명히 알아야할 것은 사단이 있는 한 걱정과 두려움은 우리에게 계속 공격이 있을 것이다. 하나님은 두려움을 벗어나게 할 능력을 주셨다. 그 능력은 사랑과 절제의 능력인 것이다. 하나님과 사람을 사랑하는 사랑과 절제의 능력인 것이다.
예수님은 때가 차서 하나님께로 가는 것을 예비하고 계셨다.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요13:1)
사랑은 서로 주고 받는 것이다.
그 사랑이 불같이 일어났다가 사그러드는 것이 사람의 사랑의 단점이다. 주님은 우리를 끝까지 사랑하셨다. 변치 않는 사랑, 끝까지 사랑하시는 예수님께 감사하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을 주셨다. 왜 서로 사랑하라고 하셨을까?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요일4:20)
마지막 만찬 때 정말 필요한 말씀을 하셨는데그 말씀이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이었다. 서로 사랑하는 사랑의 능력이 없이는 누구도 하나님을 따를 수 없기 때문이었다.
이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드러나나니 무릇 의를 행하지 아니하는 자나 또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니라 (요일3:10)
하나님의 속성은 사랑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주님이시다. 배반자인 유다 까지도 사랑하신 예수님이시다. 그 사랑의 예수님께 모든 걱정과 근심과 염려를 맡기라. 주님을 향한 믿음이 불같이 일어날 것을 믿음으로 선포하라.
2.나를 믿으라
당시 유대인에게 있어서 예수님은 생소했다. 하나님은 알았지만 예수님은 잘 몰랐다. 나를 믿는 것이 하나님을 믿는 것이라고 했다. 하나님을 알면 예수님도 알 수 있는 것이다. 빌립아 내가 오랫동안 너와 함께 했는데 너희가
믿음은 내가 아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분이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인정하는 것이다. 그 분이 다시 오실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진정한 믿음은 지식적인 것에서 머무르면 안되는 것이다. 알고 믿고 있는 것 자체가 믿음이다. 정말 믿음은 내 삶을 예수님께 전적으로 맡기는 것에 있다. 한번 밖에 살 수 없는 내 인생인데 말이다. 이것이 믿음의 고백인 것이다. 자녀교육은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 자녀교육은 어렵다. 내가 어려우면 하나님께 맡겨야하는 것이다. 내가 갖고 있는 것을 포기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신뢰하고 믿기 때문에 맡길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모든 행사를 예수님께 맡길 수 있는 것이다. 마음에 평강이 오면 예수님의 싸인을 받은 것이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요14:27)
이것이 믿음이다. 믿음이 없으면 근심과 불안으로 살수 밖에 없는 것이다. 내 안에 주님이 주시는 평강과 화평이 있으면 비참한 인생이 아닌 것이다. 내 안에 주님 주시는 평강이 있으면 그게 아니다. 믿음대로 되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믿음은 바라보는대로 되어지는 것이다. 내가 바라보지 못하는게 문제지 바라보는 것이 결코 허황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믿음으로 견고한 여리고성을 돌 때 여리고성이 무너졌다.
믿음이 있는 사람은 계속 믿음으로 살 수 있는 것이다. 세상에는 내 힘으로 안되는 일이 너무 많다. 내 힘으로 안되면 다른 방법을 찾아 볼 수 있는 것이다. 내 힘으로 안되는 걸 알았다면 인정하는 것이다. 믿음대로 되어질 것을 믿음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이런 것은 이론과 공식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다. 믿음은 실상이다.믿음을 오해하면 안된다. 근심거리가 전혀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어떤 형태로든 근심은 누구나에게 있다. 많은 근심거리를 갖고 있으면서도 평강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은 예수님 믿는 사람이다.
정말 힘들고 괴로운 것이 마음의 근심이다. 해결이 안되는 문제가 있으면 고통스럽다. 육체의 고통은 시간이 지나면 그친다. 끝없는 걱정거리로 인생을 파멸로 끌고가는 사단의 유혹을 이겨내라.
하나님을 믿으니 나를 믿으라는 말씀이 믿음으로 들어오지 않았을 것이다. 놀라운 일들을 행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대적하는것이 하나님을 믿는 행위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오히려 이들에게는 예수님이 오신 것이 죄인의 자격을 벗어버릴 수 있는 기회였지만 대부분이 대적했다. 어떤 사람이든 하나님앞에 나아가려면 예수님을 통해서만 나아갈 수 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14:6)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들을 수 있다는 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얼마든지 하나님 말씀을 대적할 수 있다. 그 안에 하나님의 영인 성령님이 없다면 그렇게 될 수 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고전12:3)
내가 하나님 믿는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이다. 놀라운 축복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근심하지 말라고 말씀해주셨다. 우리를 위해 거처를 예비하러 가신다고 말이다. 사람들은 예수님이 어디로 가시는지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가는 곳마다 기적과 유익을 주는 예수님을 엄청난 지도자라고 볼 수도 있었을 것이다. 뭔가 내가 유익을 얻겠다라고 볼 수도 있었을 것이드. 주린 자를 채워주는 그런 일을 위해서 이 땅에 오신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는 착각해선 안된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이 땅에 오신 것이다. 그렇게 사랑하는 하나님 자녀를 위해서 오신 것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기복신앙이란 내가 이 땅에서 잘 먹고 잘 사는 사람이라고 하는 것이다. 내가 이 땅에서 잘 되려고 하나님 믿는 것은 아닌 것이다. 나만을 위한 이기적인 인생을 살면서도 그 죄를 알면서도 여전히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 그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주신 것이다. 우리가 죽어서 갈 곳이 없다면 얼마나 막막할까..하나님의 이런 크고 원대한 뜻을 모르는 사람들은 단순히 자신의 유익이 사라졌기 때문에 그랬을 것이다.
우리가 예수님 믿고 사는 이유가 내 유익을 위해서라면 아닌 것이다. 예수님은 내 필요같은 작은 것을 채우기 위해서 오신 분이 아니라는 것이다. 엄청나게 큰 일을 하러 오신 예수님을 축소시키면 안 될 것이다. 우리가 가야할 곳이 분명히 있는 것에 감사한 것이다. 천국 소망이 없으면 소망이 없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천국 소망이 있다. 그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서 다시 오실 것이다. 예수님이 다시 오실 그 때에 살고 있는 것이다. 놀라운 은혜의 시대에 살고 있다.
이르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행1:11)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요14:3)
영접한다는 것은 상속받는다는 것이다.
그 길은 변치 않는 길인 것이다.
예수님이 길과 진리 되신다는 것을 전하고 영접한 자들이 더 하나님을 잘 믿을 수 있도록 도와야할 것이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좋아보이는 길이 아니라 생명의 길로 가야할 것이다.
끝까지 자격을 붙들고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을 믿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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